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빛의 해'다. '알히젠'이라는 라틴어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 하이삼의 '광학의 서(書)' 출간 10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더욱이 올해는 오귀스탱 프레넬의 파동이론 200주년, 제임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 150주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빛에 대해 이룩해놓은 화려한 과학적 성과를 되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해라는 뜻이다.

세상은 빛과 함께 존재한다. 세상을 밝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오묘하게 만들어주는 빛은 희망·깨달음·즐거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의 모든 종교의 창세기가 세상을 밝혀주는 빛으로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빛은 우리에게 온기를 주고 안전을 지켜준다. 빛을 이용한 녹색식물의 광합성이 없었더라면 지구는 지금도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삭막한 행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푸른 행성 지구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고, 우리 자신의 정체와 세상의 섭리를 알아내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된 것도 빛 덕분이다.

우리가 그런 빛에 관심을 갖고,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른 짐승과 달리 우리가 연료를 이용해서 빛을 만들어서 어둠을 밝히기 시작한 것은 50만 년 전이었다. 그렇다고 빛을 이용하는 기술을 쉽게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 하이삼이 바늘구멍 사진기(카메라 옵스쿠라)를 고안하고,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광활한 밤하늘의 신비를 관찰하고, 로버트 후크가 현미경으로 작은 세상의 경이를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 모두 지난 1000여 년 사이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빛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빛이 화려한 무지개 색깔의 '입자'로 구성되었다고 믿기도 했고, 잔잔한 호수에서 볼 수 있는 '파동'과 같은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서로 상반된 인식으로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 아이작 뉴턴 이후 지난 350년 동안 어렵게 알아낸 사실들이다.

빛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낸 것은 20세기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빛이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직진하는 전자기 파동이면서 동시에 '광자'라는 양자적 특성을 가진 신비스러운 입자이기도 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세상을 밝고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가시광선과 달리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라디오파·마이크로파·적외선·자외선·X선·감마선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졌다.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전구 덕분에 누구나 밤을 낮처럼 즐기게 됐다. 그러나 어둠을 밝히는 조명은 빛의 가장 낮은 기능일 뿐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빛에 의해 뿌리부터 변했다. 세상을 바꿔놓은 인터넷도 빛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보화 시대의 글로벌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주는 광통신과 디스플레이 기술이 등장했다.

양자효과를 이용한 발광소자(LED)는 물론이고 퀀텀닷(양자점) 디스플레이 소자도 있다. 빛은 질병 진단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병원의 혈액과 소변 검사가 대부분 빛을 이용한 분광기로 이루어진다.

빛은 우주와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밝혀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밤하늘을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수놓고 있는 별빛에 138억년에 이르는 거대한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주 만물의 구성과 운행의 근본 원리가 별빛에 담겨 있을 것이라던 고대 수메르 사람들의 짐작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미시세계의 쿼크·원자·분자에 적용되는 양자역학도 빛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생명의 신비를 밝혀주는 현대 생명과학도 빛을 이용한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걱정도 있다. 우리가 엄청난 양의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밝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밤 문화 탓에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자세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